Author : 나랑블루 / Date : 2015. 10. 27. 12:13 / Category : 정치·사회·경제/정치/사회
신창동유적 내 초기 철기시대 경작지 등 확인
- 국내 유일 초기 철기시대 조성
▲ 발굴유물_주전자형 점토 대토기 (사진제공:광주광역시)
광주광역시가 지난 9월7일부터 진행해온 신창동 유적 16차 발굴조사 결과, 초기 철기시대로부터 삼국시대에 형성된 생활유적(주거지, 가마, 저습지)과 분묘가 어우러진 대규모 농경 복합 유적임이 밝혀졌다.
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굴조사된 경작유구는 청동기시대와 삼국∼조선시대에 개간된 경우가 알려져 왔다. 초기 철기시대에 개간된 경작유구는 현재까지 광주 신창동 유적이 처음이다.
철기가 한반도에 유입돼 농경 활동이 본격화된 초기철기시대 경작지가 확인된 점은 그간의 시대적 공백기를 채워줄 수 있고, 한민족의 농업사 연구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게 됐다는 사실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.
▲ 신창동 유적 발굴현장 (사진제공:광주광역시)
이번 발굴조사는 지난 1992년 국가 사적 제375호로 지정되는데 결정적 자료를 제공한 바 있는 저습지 남쪽 구역을 대상으로 실시됐다.
▲ 초기철기시대 경작지 근경 (사진제공:광주광역시)
발굴조사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성과는 저습지와 동일한 시기(초기철기시대)에 조성된 경작유구를 확인한 것이다. 경작유구는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한 구릉 하단부를 개간해 조성했는데,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고랑과 이랑의 수가 10줄로 구성된 한 단위의 경계가 명확히 드러나 초기철기시대 농업 경작 형태와 단위의 규모, 입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.
신창동 유적지는 1963년 옹관묘의 조사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. 1992년 조사에서는 토기가마, 구상유구(溝狀遺構), 저습지, 주거지 등 유구가 확인됐고, 1995년부터 다량의 칠기류, 무기류, 농․공구류, 악기, 천생산 도구 등이 발굴돼 당시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적으로 인정되고 있다.
시 관계자는 “고대 생활상 고증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창동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해 계속 발굴 조사하면서 문화재청과 협의해 고대 복합농경유적 복원 정비를 위해 노력하겠다.”라고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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